고분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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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제39대 천황. 덴지 덴노의 장남으로 휘는 오오토모(大友) 또는 이가(伊賀)였다.
그가 덴지 덴노 사후에 실제로 천황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건 당시 정식으로 즉위하지는 못했다는 것으로, 먼 훗날 메이지 덴노가 그에게 천황의 시호를 올린 뒤에는 일단 제39대 천황으로 인정되고 있다.
2. 덴지 덴노의 후계자 문제[편집]
사이메이 덴노가 붕어한 뒤에 그녀의 장남 나카노오오에가 덴지 덴노가 되었다. 덴지 덴노는 천황이 되기 전에 동생인 오오아마 황자(훗날 덴무 덴노)에게 황위를 계승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그를 황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덴지 덴노는 아들인 오오토모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정대신으로 삼은 오오토모 황자를 후계자로 삼을 의향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결국 오오토모를 새로운 태자로 삼고 그 상태에서 붕어했다. 오오토모 황자가 정식으로 천황이 되려고 하자 오오아마 황자가 이에 불만을 품고 고대 일본사 최대의 내란이었던 진신(임신)의 난을 일으켰다. 그 결과 세키가하라 일대에서 양군은 수개월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결국 오오아마군에게 크게 패배한 뒤, 오오토모는 그 다음날에 24살의 젊은 나이로 목을 메고 생을 마감했다.
3. 사후[편집]
덴무 덴노는
라는 식으로 까면서 자결한 오오토모를 천황으로 인정하는 자에게 무자비한 형벌을 가했다. 이 여파가 어찌나 컸는지 오오토모는 메이지 덴노 때인 1870년 8월 20일 준닌 덴노, 주쿄 덴노와 함께 복위되어 '고분 덴노' 라는 시호를 받고 제39대 천황으로 공인 되었다."저 놈이 천황이라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즉 사후 천 년도 더 돼서야 시호를 받고 제39대 천황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래서 화풍 시호가 있던 시기의 천황임에도 준닌 덴노와 더불어 불구하고 화풍 시호가 없다[1] .
고분 덴노는 역대 천황 중 유일하게 생전에 천황 대접을 아예(형식적으로나마 조차) 못받은 천황이었다[2] . 실제 천황이었던 시기가 있긴 했는지 불분명하지만[3] , 메이지 시대에 덴무 덴노 이전에 즉위한 천황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추존 천황은 아니다.
일본에서 거의 최초로 한시를 지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8세기 중엽에 편찬된 가장 오래된 일본 한시집인 《회풍조》에 오오토모 황자의 한시가 수록되어있다.
4. 가족관계[편집]
- 황후皇后: 토오치노 황녀(十市皇女, 653?~678) - 덴무 천황(天武天皇, 631?~686)의 장녀
- 장남: 카도노노 왕(葛野王, 669?~705)
- 비妃: 후지와라노 미미모토지(藤原耳面刀自) - 후지와라씨(藤原氏)의 시조인 후지와라노 카마타리(藤原鎌足, 614~669)의 딸
- 딸: 이치시히메노 왕(壱志姫王)
[1] 화풍 시호는 헤이안 시대때 없어진다. 사라진 지 오래된 메이지 덴노때 시호를 받았으니 화풍 시호는 받지 못했다.[2] 스토쿠 덴노는 그나마 생전엔 천황으로서 대접을 받았고, 준닌 덴노는 허수아비였지만 폐위하기 전까지만 해도 천황으로 대접을 못 받은 건 아니었다.[3] 이 때문에 고분 덴노가 사실은 천황으로 추존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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